얼음나무 숲 - 집착과 광기로 점철된 어느 도시와 음악 이야기

1. 첫인상 및 배경

<얼음나무 숲>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참 특이하다"는 감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그다지 흔하게 다루는 소재가 아닌 음악에 대한, 그것도 환상문학이라는 점에서, 특이한 것에 흥미를 느끼는 저로서는 강한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정말 놀랍고 만족스러웠습니다. 단순히 음악이라는 소재는 장식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기우를 말끔하게
날려버린, 정말 음악이라는 소재를 십분 살려낸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과거 어느 인물에 의해 만들어지고 음악이 비상하게 번성했으며,
귀족과 평민의 계급이 존재하는, 굳이 유럽 역사에 빗대자면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한 시기인 듯한 기분을 들게 하는 "에단"이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얘기입니다.

혹자는 이런 모호한 설정 - 예를 들면 마르티노니 파스그라노이니 하는 용어 - 때문에 뭔가 부족하다는 말씀들을 하시지만,
저는 그래도 이것이 "설정에 목을 매는 바람에 설명하느라 글의 맥이 끊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읽다보면 그런 설정은 그저 장식에 불과할 뿐, 자연히 글의 흐름에 생각을 맡기고 보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향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 전체를 지배하는 키워드 - "집착"과 "광기"

그러나, 이 책은 한편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것은, 이 책에 나오는 주역들(그리고 주요 조역들)이 한결같이 뭔가에 강렬하게 집착하고 있는데서 출발합니다.

이 책의 화자인 고요 드 모르페라는 인물은, 타인도 인정하는 자신의 뛰어난 피아노 연주능력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경애하는
(...) 친구인 이 이야기의 주역 아나토제 바옐의 "단 하나의 청중"이 되기를 갈구하고 그것에 편집적으로 집착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저것이 남자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어제끼는 과장된 유약한 모습 때문에 눈치채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다소간 고의적으로 과장된 행적과 감정의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욕구
들이 모두 배제되고 오로지 "청중"이 되기를 원하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이것은 단순한 "욕망"의 차원을 넘어선
"집착"이요, 섬뜩한 "광기"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에 반해, 고요가 경애해 마지않는 주역 아나토제 바옐의 경우에는 훨씬 노골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의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단 하나의 청중"을 찾기 위해서, 그는 일부의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고 - 물론 친구들에게도 피상적인 부분에 한해 열어놓습니다 -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며 세상의 모든 것들
을 비웃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고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면서, 그는 점점 세속의 영광과 비례한 무서운 함정에 빠져들고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흑막인 악세 듀드로-에단을 창조한 신-의 현신(누구인지는 책에서 확인하십시오)에 이르르면, 그야말로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후세의 천재를 이용하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음악을 재현하게 만들면서 그에 장해가 되는 주변
인물들을 잔혹하게 처단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책에서는 그 방식이 명확하지 않고 오로지 "오랜 시간 부패된 듯한 시체"로 일순간 변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의 방법론이나
세세한 트릭 같은 것은 이 책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욕망을 위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세한 설정에 천착해서는 이 책에서 발산하는는 섬뜩한 광기와 욕망의 모습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그 외에도, 각각의 조역들은 정도와 형상이 다를 뿐, 인간의 다양한 세속적인 욕망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면서, 주역들에게 배치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주저없이 무대에서 물러나는 (살해되던가 도태되던가)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3. 오베르튜레, 그리고 피날레

이 책의 시간적인 순서는 본문 - 오베르튜레(전주곡) - 피날레 의 순서입니다.

즉 서장에 해당하는 오베르튜레에서는 모든 사건이 일단락된 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바옐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것을 비통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 모든 사건을 거친 후 이미 껍데기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 고요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피날레에서는 그 사건 이후 10년 뒤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여기서 두 주역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보여집니다.
이 모든 사건의 가장 피해자였던 바옐은, 에단을 떠나 먼 곳에 살면서 비로소 자신을 괴롭혔던 집착을 깨닫고 그것에서 벗어나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화자인 고요는 사건 이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가, 오랜 집착의 대상인 바옐과의
만남을 통해서야 비로소 마음의 해방을 얻는, 여전히 집착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것은 글의 말미의 전기작가의 글을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이 글이 좀더 암울한 여운을 주기 위해서는 피날레 부분이 없이 본문 이후 오베르튜레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랬다면 책을 덮은 후의 뒷맛은 아마도 그다지 좋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신에 의한 꼭두각시 놀음이었고,
그로 인해 주역들은 파국을 맞은 채로 이야기는 끝이 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작가는 피날레의 모습을 통해서, 파국의 끝에는 이러한 구원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화자처럼 파국의 여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한 바옐의 모습은,
인간은 깨달음을 통해서 파국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마냥 무거운 결말에서 독자들에게 떨어진 무거운
짐을 덜어주면서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무거운 글에 가벼운 결말이라고 해서 마냥 뜬금없는 것만은 아닌 것입니다.


4. 맺으며

43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2시간 만에 앉은 자리에서 읽을 정도로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물론 주인공의 모습이 다소 과장된데다가, 남자들의 성격이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납득하기 힘든 모습이나 행태를 보이는
덕에 몇몇 부분은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만, 그런 문제는 접고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글의 흐름에 맡기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사건을 쫓아가다보면, 인간의 집착으로 인한 잔인함- 심지어 신조차도 예외가 아닌 -이 빚어내는 만화경과 같은 모습에
어느 새 탄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책을 리뷰할 기회를 주신 이글루스 운영진께 감사드리면서 간만에 좀 긴 리뷰를 마칩니다.
헌데 역시 오래 고민한 것 치고는 리뷰글이 맘에 안드네요 (웃음)


렛츠리뷰

by 마징곰 | 2008/03/10 23:09 | 책으로 보는 세상 | 트랙백 | 핑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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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이벤트가 아니더라도제가 보유한 각종 소재들에 대해서 좀 더 정성을 들여서 리뷰를 하도록 해야 겠습니다.그것이 개인적으로도 이로운 점이 많을 테니까요.얼음나무 숲 - 집착과 광기로 점철된 어느 도시와 음악 이야기 ... more

Commented at 2008/03/12 19: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마징곰 at 2008/03/13 20:33
비공개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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